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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
[칼럼] ‘낙태죄’ 폐지는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첫걸음
2016.11.04 | 게시자 금천직장맘지원센터 | 조회수 422

지난 9월 22일 보건복지부는 현행 의료법 시행령 ·시행규칙에 모자보건법 14조 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시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항목으로 포함시키고, 이를 시술한 의사는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을 정지할 수 있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이러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하여 즉각 반발하여, 산부인과 의사들은 개정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부터 전면적인 시술 중단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였다. 인공임신중절시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포함시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시술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의사들의 태도 모두 ‘낙태죄’의 존재로 인해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명확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연간 20만 건의 인공임신중절시술이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낙태는 범죄이기 때문에, 임신을 중단하려는 여성들은 인공임신중절시술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습득하기도 어려웠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에도 제한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낙태시술 처벌만 강화한다면, 낙태율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의료진에 의한 고위험 ·고비용의 임신중절만이 늘어날 것이다.

출산율 감소가 목표였던 1960~1980년대에 국가는 여성의 몸을 국가발전의 도구로 삼아 불법 낙태를 조장하고 방기해왔으며, ‘우생학’에 기초한 모자보건법에 의거하여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태아의 낙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 왔다. 그런데 이제 출산율 저하가 문제로 떠오르자 이를 해결하겠다며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워 낙태죄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정부는 인구조절정책의 하나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심을 두었지만, 실질적인 여성 노동자들의 재생산권, 즉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실행할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출산 장려의 주요 ‘타겟’으로 여겨지는 기혼 여성들이 잠재적 육아휴직 대상자로 분류되어 채용 및 승진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는 수많은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당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원치 않는 유산을 경험하거나 불임이 된 여성들의 건강권과 노동권 문제들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임신, 출산, 육아는 여전히 여성 개인의 삶에서 현실적인 제약과 차별, 불평등의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낙태죄’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제까지 임신중단에 대한 책임과 낙인은 온전히 여성이 짊어졌음에도 이에 대한 결정권은 국가 혹은 남성 배우자가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낙태죄 폐지는 ‘태아’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돌보고 키우며 지켜내는 주체는 다름 아닌 임신과 출산을 수행하는 여성 당사자이기에, 임신을 지속하는 경우건 임신을 중단하는 경우건 이는 모두 임신한 여성이 태아에 책임을 다하는 행위로 보아야 하며, 그 결정을 지원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가는 ‘낙태죄’를 통해 임신, 출산, 임신중단, 돌봄을 비롯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시킬 것이 아니라, 결혼 여부, 성적 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아이를 낳을 것인지 혹은 낳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목소리를 담아 10월 17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의료법 개정안 철회와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장애・법률・의료・학계・시민사회단체(2개 연대체, 72개 단체)와 개인 연서명자들(4,101명)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낙태죄 폐지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의료법 개정안이 촉발시킨 낙태죄 폐지의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대전, 대구, 전북, 광주, 부산,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여성의 몸을 불법화 하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가 진행 중이며, 다양한 여성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으로 촉발된 ‘낙태죄’ 폐지 요구는 모든 개인이 재생산권이라는, 제 삶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짓는 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시작점이다. 언제 어떻게 누구와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를 낳을 것인가, 혹은 낳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권’ 문제를 넘어 개인과 사회가 함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며, ‘낙태죄’ 폐지는 이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 시급히 풀어야 할 선결과제이다.


 글쓴이. 김선혜(성과 재생산 포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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