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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
[인터뷰]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를 찾아가다 ①
2017.01.25 | 게시자 금천직장맘지원센터 | 조회수 407

서울시 금천직장맘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는 2001년 여성 공인노무사들을 주축으로 하여 설립된 단체입니다. 노동 전문가들이 중심을 이루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도 이익단체가 아닌 순수 비영리단체로서의 면모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집단이기도 합니다.

전국에 15군데, 서울에 3군데밖에 없는 고용평등상담실을 운영하며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고, 법률구제지원・교육・연구출판・연대 활동 등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여성노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이 단체의 사무국장 이영희 노무사를 만나 센터의 활동 및 지금 주목하는 현안들에 대해 물었습니다.


‘여성노동’ 전문가들의 열정 어린 활동


 금천직장맘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이하 ‘여노센터’)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이영희  우선 상담과 법률 지원을 들 수 있겠죠. 채용, 임금, 승진, 해고 등 여성들이 일하는 전 과정에서 겪는 차별적인 문제들과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상담을 합니다. 상담 과정에서 ‘여성 노동’ 이슈와 직접 관련된 문제라 판단되고 내담자 본인도 원할 경우에는 원스톱 서비스법률지원을 하고요. 돈이 없어 문제제기를 못하는 분들이 계시면 안 되니까 법률 지원도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 교육과 전문가 교육을 실시하는데요. 대중 교육은 취약 계층이나 특정 계층 근로자 위주로 일반적인 노동법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센터는 여성노무사들이 모인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성희롱예방강사 양성 과정과 같은 전문가 대상의 교육도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외 활동으로는 여성 노동 관련 정책 연구와 출판 작업이 있는데, <여성노동>이라는 잡지도 꾸준히 내고 있고요. 대외 활동으로는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관련 기사 참고)과 가사노동자 관련한 법률 준비하는 연대 활동(관련 기사 참고)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금천직장맘  지금 진행하시는 법률 지원 사건들은 어떤 내용인가요?


 이영희  비밀로 해야 하는데(웃음)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으니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한 대기업에서 일어난 사건인데요. 대기업들이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공공재원의 지원금을 받는 기간 동안만 운영하다가, 지원 기간이 끝나면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나요. 

이 사건에서는 모 대기업이 탈북자를 위한 기업이라는 명분을 걸고 사회적기업으로 청소업체를 만들었다가, 지원 기간이 끝나자 사회에 환원하겠다면서 한 비영리단체에 넘겼습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 대표가 그 업체 사장이 되었는데, 사실 내막을 보면 대기업의 사내 하청이죠. 그 기업 관련 일만 하게 하고 낙하산 상무를 내려 보내면서 ‘이 사람한테 임금 몇 억 원을 줘라, 도급액은 얼마다’ 이런 식으로 거의 지배하는 구조가 된 거예요. 낙하산 임원이 원청회사에서 온 왕처럼 행세하니, 이 회사의 관리자인 여성노동자가 그런 전횡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신 거죠. 그러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면서 관리자였던 분을 청소 현장에 부당전보했고, 괴롭힘도 시작되었어요. 그 와중에 성희롱도 벌어지고, 원청 대기업은 여전히 자기네 직원을 파견했고요. 그래서 그분에 대한 부당전보 구제신청부터 시작해서 문제를 해결할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건은 모 신학대학에서 몇 년간 강의를 한 시간강사 여성의 경우인데요. 이 학교에서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고 목사가 아니면 교수 자격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그분이 뭘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 신학을 하시는 분이니 기도를 했답니다. 그냥 기도만 했는데, 그걸 학교가 알고서 다음 학기에 이미 배정되었던 강의를 다 없애 버렸어요. 그분도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진정을 했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서는 학교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청구까지 했지만 결국 모두 이겼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인 성차별은 거의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죠. 

이외에도 육아휴직 대체자가 종전 근무자에 비해 차별을 겪는 문제에 대한 행정소송도 진행했는데, 종전 근무자를 비교대상자로 인정받아 승소했고요. 조선족 간병인 노동자의 근로자성이 문제가 된 산업재해 불승인에 대한 심사청구 사건에서도 비록 근로자성은 인정되지 못했지만 근로자성 인정의 여지가 있다는 유의미한 판정서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여성노동자가 겪는 다양한 이슈들을 포함하는 사건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천직장맘  가사노동자 관련한 법률을 준비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관련한 연대 활동에 대해 소개를 좀 해 주시겠어요?


 이영희  사실 가사노동자 단체는 생긴 지 오래 됐고 큰 단체도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 우리가 함께하는 곳은 한국여성노동자회 부설기관인 ‘전국가정관리사협회’라는 단체입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는 IMF 때부터 실업자 대상 공공기금으로 자조사업을 계속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육아나 청소 등의 가사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모이게 되었고 당사자 조직도 결성되었어요.

2011년 ILO(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전세계 가사노동자들에게 노동권과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가사노동자 보호협약’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노동부도 ‘비공식부문 노동시장 공식화’를 추진하겠다면서 2016년부터 ‘가사서비스 이용 및 종사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발표를 했죠. 그런데 노동부가 내놓은 법안은 ‘가사노동자의 노동권 보호’가 아닌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초점이 있는데다가 법안 시행도 계속 미뤄졌어요. 그래서 한국가정관리사협회 및 연대 단체들이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과 함께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발의했는데, 통과되지는 못했죠. 핵심은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 보장 및 4대보험 적용, 한부모・저소득 맞벌이 가정 등에 가사서비스 공적 지원 및 일자리 창출, 제공기관 인증 및 관리감독 규정, 공익적 제공기관 육성 및 지원 등입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죠.


 금천직장맘  이렇게 많은 활동을 사무국에 계신 몇 분 중심으로 모두 하고 계신 건가요?


 이영희  그렇진 않고요.(웃음) 저희 단체는 33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사단법인입니다. 모든 사업은 교육국, 법률지원국 등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무국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들을 기획하고 지원하죠.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걸어온 길


 금천직장맘  2000년도에 여노센터가 설립될 당시, 특별한 여성 노동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이영희  사실 센터의 시작은 순전히 초대 대표를 지내신 故 윤자야 노무사님의 의지였어요. 1기 공인노무사이시기도 한 윤자야 노무사님은 노무사 활동 초기부터 여성단체들과 함께하며 여성노동자들을 열정적으로 지원하셨는데요. 1987년 한국통신의 교환직 43세 조기정년제도 소송 사건이라든가 1994년 서울신문사 여성기자 명예퇴직(부당해고) 사건, 1999년 대한제분 결혼퇴직 사건 등 여성노동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례로 남은 사건들을 맡아 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노무사 한 사람만의 노력이 아니라 여성노무사들이 함께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시고 결국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를 설립하신 거죠.

사실 처음부터 단체의 역량이 조직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른 노무사님들은 윤자야 선배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같이 하시는 정도였어요. 그 이후에 좀 더 많은, 젊은 여성노무사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강분 노무사님이 대표를 맡으셨던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안정적인 사무실도 갖추고 상근 인력도 생기면서 물적・인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금천직장맘  초기에는 센터의 활동이 성차별 문제에 따른 법률 지원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성희롱 상담이 중심을 이룬다고 들었는데, 이런 변화는 왜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이영희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어요. 앞서 언급한 한국통신 김영희 씨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성차별 사건인데, 여성이 대부분인인 교환직만 43세에 정년퇴직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죠. 그분은 직장으로 다시 복직했는데, 1992년에 다시 53세 정년규정에 따라 퇴직하게 되어서 다시 문제 제기를 하셨어요. 결국 노동위원회에서 일반직 근로자의 정년이 58세인데 교환직의 정년만을 53세로 정한 것은 ‘여성근로자의 노동가능연령이 53세에 이를 즈음 현저히 떨어진다는 근거가 없는 이상,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취지로 부당해고를 결정했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고평법’)이 2007년에 크게 개정되면서 여성에 대한 ‘간접차별’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조항들이 추가되었는데, 그 조항이 들어가기 전에 사실상 ‘간접차별’의 법리로 성차별을 인정했던 사건이니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 전체에서 성차별에 대한 법적 문제제기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고평법상의 중요한 판례로 남아 있는 건 그때 사건들이지, 그 이후에 소송 자체가 없어요.당시에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남자는 돈을 더 많이 주고 여자는 적게 주는 행태가 많았고 그에 대한 소송도 많았는데, 2000년대 말쯤부터 이런 ‘직접 차별’은 사용자들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없어졌고 ‘간접 차별’에 해당하는 문제들이 더 첨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이 직무를 성별로 분리해 버리면서 ‘여성 집중 직종’들이 생겨났고, 간접차별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려워졌습니다.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고용상 성차별을 사실상 규범으로 적용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요. 이렇듯 간접 차별에 대해서는 소송을 해도 실익이 별로 없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려는 에너지 자체가 없어진 것 같아 무척 안타깝습니다.


인터뷰는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