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Icon mobile
인터뷰&칼럼
[서평] 여성의 일, 새로고침
2017.03.24 | 게시자 금천직장맘지원센터 | 조회수 290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잘못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회는 애도 잘 키우고 싶고 일도 하고 싶다면, 너무 욕심이 큰 거라고 하죠. 육아휴직을 무조건 3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아니다 싶어요. 3년 쉬고 복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중략) 자기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기를 바라지, 무조건 쉬게 해주는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근데 자꾸 여성을 선택의 기로에 몰아넣는 거죠. 너 일할 거야, 육아할 거야?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잖아요.”


2016년 여름, 협동조합 롤링다이스가 개최한 기획 대담 ‘여성의 일, 새로고침’ 오픈 테이블에 참석한 한 삼십대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자신의 일을 고민하는 여성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존재를 확인하며, 고민을 나누고 나아갈 길을 함께 모색’하길 바라며 마련된 이 행사는 서른 명의 여성들이 모여 고민을 나눈 오픈 테이블로 시작하여 곽정은 작가, 김희경 전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김현정 CBS PD, 장영화 OEC 대표, 은수미 전 국회의원 등 또 다른 ‘일하는 여성’들과 만나는 다섯 번의 대담으로 이어졌다. 이 책 여성의 일, 새로고침(닐다×롤링다이스, 2017)은 그 만남의 기록이다.


각 대담은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 강연자의 이야기를 들은 뒤, 오픈 테이블에서 나온 질문들과 현장에 참석한 청중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강연장이었다면 ‘이 사회 여성들의 롤모델’이니 ‘성공사례’를 듣겠다고 나섰을지 모르지만, 이 대담의 주인공들이 쏟아놓은 이야기들은 그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하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어떤 ‘실패’를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꼈는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는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가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18년간 언론사 기자로 일했던 김희경 본부장은 본인이 소위 ‘명예 남성’이었다는 자백으로 말문을 연다. 초짜 기자 시절부터 ‘여자니까 안 된다. 여자라서 뭔가 불편하다’는 말이 듣기 싫어,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던 사회부 경찰 기자 팀에 들어가려 애를 쓰고 술자리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남성들의 네트워크’에서 배제되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그러다보니 일을 잘 한다는 칭찬에는 우쭐하다가도 술자리에서 힘들어하는 여자 후배를 윽박지른 다음에는 자괴감을 느끼는 등 안정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로 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가 크게 바뀐 것은 후배 기자들이 당한 성희롱 사건의 공동 고발인 대표를 맡으면서부터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유착 체계 속에 굴러가는 언론계의 관행을 비판하고 성희롱을 공론화하는 순간, 언제나 똑같은 반응을 마주했다고. “그러게 여자가 거길 왜 따라가.” “걔가 술 마시는 거 워낙 좋아했어.” 그는 되묻는다. “평소에 여자 기자들이 술자리에 안 간다고 하면 ‘여자니까 안 간다’면서 비난하잖아요?” 그리고 남성 중심적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는 조직이 언론계만은 아닐 거라며, 여성이 일하는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CBS 라디오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김현정 PD는 출근하느라 모유수유가 힘들던 때, 아이의 준비물을 챙겨주지 못했던 때 등 엄마로서 죄책감을 느낀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엄마로서 이런 것도 못 해주나 싶어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자. 완벽한 엄마가 될 수는 없다. 대신 꼭 해야 되는 건 열심히 하자.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아이는 잘 자란다며 ‘언젠가는 아이가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날이 오겠지’ 하며 살아간다는 직장맘이다.

젊은 시절 변호사에 합격한 뒤 어린 딸을 시부모님께 맡기고 일에만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장영화 대표. 그에게는 어느 날,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쏟는 시간을 아이에게 할애한다고 해서 직업적인 성취를 일구는 데 절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창업을 했기에 근무시간을 조금 줄여서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며, 취업이건 창업이건 ‘엄마의 일도 엄연한 직업이며 커리어’라고 강조한다.


취업의 관문을 넘는 순간부터 남성들보다 뛰어나야 인정받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많은 여성들. 일을 하며 여성임을 부인해야 하는 순간은, 그렇기에 스스로 여성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순간이다. 대담의 참석자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여성은 야망이 없다’고 비판받지만, 사실은 ‘여자는 수학을 못해’ ‘여성은 리더가 되지 못해’ 같은 부정적인 젠더 고정 관념이 내면의 장벽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제안한다. 남자가 일을 못하면 ‘아무개 씨 일 되게 못하네’가 되지만 여자가 일을 못 하면 ‘여자는 원래 저래’가 되어 버리는 실상 속에서 우리가, 일을 가진 여성들이 그다음 여성들의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자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로 가서 집단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자고.


‘여성의 적은 여성’라는 해묵은 편견 앞에서는 이들 모두 주저하는 기색 없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곽정은 작가는 지적한다.

“정말 여자의 적을 꼽는다면 그건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 아닐까요? 왜 굳이 ‘적’이라는 표현으로 여자들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걸 제일 처음 입 밖으로 낸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권력을 갖고 있는 쪽은 권력을 갖지 못한 쪽이 연대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들끼리 싸우게 만들면 절대 연대할 수 없거든요. 매우 많은 식민 정책들이 그랬고요.”

은수미 전 의원은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는 ‘네트워크’가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네트워크면 좋겠고, 거기엔 포기한 자에 대한 용서와 포기하지 않는 자의 도전이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민주화 운동에 전념하던 시절, 자신이 조직 내 여성 문제들을 포기했던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자 후배들만은 포기하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사실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그리 거창하지 않게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직장에서 각자의 문제들을 껴안고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듯 김현정 PD의 말을 남기며, 이 책 『여성의 일, 새로고침』을 추천한다.

“내가 여성이어서 겪는 문제가 생길 때, 여성 선후배, 여성 동료들이 분명히 도움이 되거든요. 우리끼리 모여서 힘든 이야기,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토닥토닥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절대 여성의 적은 여성이 되지 않습니다.”


글쓴이. 조지혜 (서울시 금천직장맘지원센터 기획협력팀장)